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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 1등에서 학교 밖 청소년, 독립마블에서 코레아우라 - 프롤로그

최종 수정일: 2025년 12월 21일

안녕하십니까.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나가는 사람들의 모임, SG상상공작소의 피노키오입니다. 오늘, 저희 SG상상공작소의 첫 번째 작품인 'KOREA URA' 프로젝트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 뿌리가 된 경험을 천천히 여러분과 나눠보고자 합니다.

2016-2, 학교 밖으로 나가며 만들기 시작했던 다른 '공부'


'갈고 닦는다' 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 공부. 시험 공부는 말 그대로 시험을 잘 보기 위해 스스로를 갈고 닦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전교 1등을 꾸준히 유지하며 누구보다 시험에서 좋은 결과를 내는 것으로 반사 이익을 즐겨왔었다. 하지만, 가장 에너지가 넘치는 청소년기에 세상에 다양한 문제를 푸는게 아니라, 시험 문제를 하나 틀릴까 노심초사하며 같은 문제를 반복해서 푸는 행동은 매력적이지 않았다. 고등학교 1학년 나는 그 행동에 의미를 입히는데 실패했다. '왜 학교에 다녀야 하죠?'라는 질문을 많은 교사들에게 던졌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으니까', '선택지가 넓어지니까' 정도였다.


선택지가 정말 넓어지는 게 맞나?

내가 전교 1등을 계속하면 이 사람들은 내가 바리스타나 공장 일을 하는 것을 이해할까?

그냥 본인들이 생각하기에 좋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게 아닌가?

나는 의사라는 직업을 관찰한 결과, 나에게 적합하다는 걸 느끼지 못했는데?

좋은 대학을 가면 뭐가 다르지?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이 모여있는 환경?

전교 1등 캠프에서 많이 경험해 봤는데 매력적인지 잘 모르겠던데?


이런 뒤늦은 사춘기 생각의 종착지를 찾기 위해 도서관에 박혀 교육학 파트의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리고 보통 책은 사회에 불만이 많은 분들이 만든다. 그 서적들을 열심히 탐구한 결과, 나의 고등학교 생활은 2학년 1학기에 마침표가 찍혔다. 자퇴 신청서를 내는 건 정말 간단하다. 교무실에서 나를 찾고 담임 선생님과 짧은 인사를 나누고, 사인을 하면 집에 가도 된다. 휴대폰도 덤으로 들고. '이게 다야?'하는 생각과 함께 치열하게 시험 공부를 했던 과거가 떠올랐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나는 '작년에 청소년 특별회의에서 내가 제안한 청소년증에 버스 카드를 추가하는 정책의 혜택을 이제 내가 받는건가?'하는 생각을 했다. 사람의 성장과 변화를 이끌 수 있는 공부, 교육을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보다 그 생각이 먼저 들었다.



2016-5, 이게... 아닌가?


나는 책을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책을 읽는 것도 쓰는 것도, 학교를 다닐 때처럼 재밌지 않았다. 거대한 골리앗을 상대하는 다윗이 된 듯한 내 모습이 좋았던 걸까? 막상 학교에서 벗어나 아무도 나에게 압박을 주지 않으니 굉장히 공허해졌다. 터질 듯이 커져가던 교육에 대한 비판적인 생각은 바람이 다 빠져버린 풍선이 되어 머릿 속 한 켠에서 이따금 자신의 존재를 주장할 뿐이었다. 그래도 써야지. 그런데 뭐를? 글을 쓰면 쓸수록 '이건 내 생각이 아니라 남들의 생각을 그저 각색해서 적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생각을 사람들과 나누고 확인하고 싶었다.'학교가는 길'이라는 페이스북 페이지와 설문조사, 이를 시각적으로 부각할 수 있는 1인 시위 팻말을 만들었다. 그리고 노트와 녹음기를 들고 서울로 향했다.




2017-4, 나는 얼마나 작고, 부질없는 존재인가.


  5시간 반이 넘게 걸리는 버스를 타고 난 후, 센트럴 터미널에 내렸다. 화려한 공간과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홀로 팻말을 든 나. 백화점에 진열된 조약돌이 된 것만 같았다. 다시 돌아갈까. 그래도 내가 뱉은 말은 지켜야지. 무작정 교육청을 검색하고 버스를 탔다. 도착한 서울시 교육청. 공사 먼지와 노조의 현수막이 어지럽게 얽힌 길. 나는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정문 앞에 도착한 날 맞이한 건 반전이 아닌 그저 열심히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공무원 분들이었다. 그 사람들은 천천히 구경하며 한 칸 한 칸 계단을 올라갔다. 그 곳 말고는 나에게 허락된 공간이 아니라고 느꼈다. 마지막 층에 도착했고, 기다렸다. 무엇을 기다리는지는 몰랐지만, 그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한참을 벽에 적힌 글자들을 읽고 있었는데 저쪽 계단에서 선생님들이 올라왔다. 위클래스 상담 선생님과 동료 분들이었다. 눈이 마주쳤고 들어오라고 얘기해주셨다. 학교를 그만두고 서울로 올라왔다고 말씀드렸고, 좋은 선택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신이 아는 분들을 소개해주셨고, 나는 수첩에 열심히 받아졌었다. 전교조와 전국학부모연합의 연락처와 주소. 사무실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생각보다 훨씬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그렇지만 나는 학교를 우리가 왜 다녀야하는 지에 대한 답은 찾지 못했다. 그래서 다시 길거리로 향했다.


그 다음 찾아간 곳은 학원가였다. 나와 대칭점에 있는 공간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가지고 도착해보니, 그저 건물과 아파트가 많은 동네였다. 근처 김밥 천국에서 주린 배를 채우고, 피켓을 꺼내들었다. 어디에 서있을까.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사거리에서 '어떤 걸 하고 싶은 지, 대화를 나눠본 적 있나요?'라는 피켓을 들고 섰다. 또래가 바쁘게 지나가는 곳에서 홀로 피켓을 들고 서있는 일은 생각보다 힘이 든다. 4시간 정도 서있는 동안 세 명과 대화할 수 있었다. 한 명은 KT 대리점 직원. 근처 가게에서 구경하시다, 사탕과 응원을 함께 주시고 돌아가셨다. 두 번째는 블로거를 자처하는 20대 남자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학생이 아니었을까. 내 이야기로 글을 쓰고 싶다고 사진을 찍어가셨는데 아직까지 확인하진 못했다. 세 번째는 학부모셨는데 생각하지 못한 이야기를 꺼내셨다. 당시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년 째 되는 해였는데, 대입 형평성에 대한 논란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런 얘기도 좋기는 한데 차라리 그런 불공정에 대해 얘기하는게 더 중요하지 않냐는 질문을 던지셨다.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이야기라 당황했지만, 그에게는 내 모습이 비슷하게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대학교 사범학관에 들려서 행복하냐는 질문을 대학생들에게 건냈다가, 사이비 취급을 받는 경험을 끝으로 나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후로 버섯 농장, 오리고기 공장, 주유소, PC방, 편의점 가리지 않고 많은 일을 경험했다.



2019-11, 안동의 한 교실에서 시작된 작은 변화, '독립마블'


2018년 안동대학교 교육공학과에 진학했고, 꾸준히 교육에 새로운 시도를 더하는 작업을 이어갔다. 1년이 지난 후, 보다 많은 학생들과 함께 작업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고 '교육기부단 FLEX(Friendly Leading Educator X)'라는 사범대 연합 교육봉사 동아리를 만들었다. 겨울방학 동안 지역 학교와 직접 설계한 수업으로 특별 활동을 진행하는 '알락달락' 프로그램 공고를 보고 부푼 마음과 함께 기획을 시작했다.


수업 주제는 한국사. 그 중에서도 경북의 독립운동가를 주제로 선택했다. 안동은 독립운동가를 전국에서 2번째로 많이 배출한 지역으로, 지속적인 독립운동 교육을 진행 중이다. 우리가 좋은 프로그램을 만든다면 꾸준히 활동을 진행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학생들이 한국사를 암기 과목이 아니라 재미고 유익한 경험으로 받아들이길 원했다. 우리는 크게 두 가지 프로그램을 설계했는데 하나는 독립운동을 주제로 한 보드게임을 만들어 아이스브레이킹을 하고, 최종적으로 저항 시인 이육사의 시를 개사해 랩 가사로 만들어 힙합 뮤직비디오를 찍는 활동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여러모로 대책없는 프로그램이다. 음악 편곡은 커녕 랩을 할 줄 아는 사람도 없었다. 기획서가 통과된 이후로 나는 공강 시간마다 노래방에 가서 랩 연습을 했다.


예산이 확정됐고 나는 안동의 여러 학교 문을 두드렸다. 정장에 음료수를 사들고 직접 방문도 해보고, 전화도 열심히 돌렸다. 거의 모든 학교에서 거절 답변을 받았을 때 쯤, 복주여자중학교 1학년 친구들과 만날 기회를 얻었다. 여자 중학교에서 받아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는데, 설레는 마음으로 교실 문을 열었다.


처음에는 낯선 선생님들 앞에서 어색해하지 않을까 걱정도 했지만, 게임판을 펼치자 아이들의 눈빛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주사위를 던지고, 칸을 옮기고, 미션을 수행하며 어느새 교실은 웃음소리와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한 판만 더요!"를 외치던 아이들의 아쉬운 표정, 게임을 통해 자연스럽게 독립운동의 주요 사건과 인물들을 이야기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단순한 보람을 넘어선 깊은 확신을 안겨주었다.




"아, 이거다! 역사는 게임처럼 즐거울 수 있구나!"


딱딱한 교과서가 아닌, 직접 참여하고 소통하는 게임을 통해 아이들이 역사와 얼마나 쉽게 친구가 될 수 있는지를 확인했다. 이후에는 준비된 프로그램을 하나씩 해나갔고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명품 옷을 FLEX할 수 없으니, 흰 옷에 그래피티로 개성을 표현하거나, 다같이 교실에서 랩을 하며 웃던 경험은 나에게도 잊지 못할 시간으로 남았다.



 이 소중한 경험은 저희 가슴속에 꺼지지 않는 불씨가 되었다. 어떻게 하면 이 작은 성공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더 깊이 있는 역사적 경험을 선사할 수 있을까? '독립마블'을 통해 확인한 재미와 자발적 참여를 더 잘,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2024-3, KOREA URA, 독립마블의 꿈을 잇다

지펴진 불씨는 군대 입대 이후에도 계속해서 커졌다. 훈련소에서 시간이 날 때마다 삼국 시대를 주제로 한 카드 게임을 설계하곤 했다. 그리고 24년 3월 콘텐츠진흥원에서 2천만원의 콘텐츠 개발 사업비를 지원하는 것을 알게되었다. 이번에는 보드게임의 완성도도 높이고, 사지방에서 공부한 코딩으로 AI 독립운동가와 대화할 수 있는 서비스 까지 더한 내 상상 속의 교구를 개발해보기로 했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KOREA URA'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기획되고,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지를 본격적으로 얘기해보려합니다. 저희의 이야기에 따뜻한 응원과 관심 부탁드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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